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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엔진 듀오가 보여 준 또 다른 신세계
PC엔진 듀오는 저와 동생에게 게임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준 콘솔이었습니다. CD 매체의 장점을 살려 사운드와 그래픽, 그리고 게임 전체의 분위기까지 기존 롬 카트리지 기반 게임과는 확실히 다른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스4나 스내쳐 같은 작품을 하면서도 이미 충분히 놀랐지만, 게임 하나를 끝내고 나서 다음 CD를 어떤 것으로 바꿔 올지 기대하는 시간까지도 참 즐거웠습니다. 새로운 게임을 구해 올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오프닝이 우리를 놀라게 할까 하는 설렘이 있었습니다. 특히 PC엔진 듀오 게임들은 시작부터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과 강렬한 음악으로 게임의 세계를 먼저 보여 주는 경우가 많아서, 본격적으로 플레이하기 전부터 이미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예전처럼 동생과 상의해 주말에 게임 매장에 가서 다른 게임 CD를 하나 교환해 오기로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심부름은 제가 형이어서 그런지 동생에게 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동생이 교환해 온 게임이 바로 악마성 드라큘라 X였습니다. 처음 보는 게임이었지만 제목부터 왠지 대단한 작품일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CD 케이스와 동봉된 매뉴얼을 훑어보는 순간, 일본어를 다 읽지 못해도 이 게임이 단순한 액션 게임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습니다. 화면 구성과 일러스트, 전체 분위기만으로도 “이 게임 분명 다르다”라는 직감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프닝만으로도 압도했던 악마성 드라큘라 X
저는 새 게임을 시작하면 반드시 오프닝부터 천천히 보는 편이었습니다. 아마 메가드라이브로 처음 접했던 썬더포스4의 강렬한 오프닝이 그런 습관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악마성 드라큘라 X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임을 켜고 주인공이 불타는 마을로 향하기 위해 장비를 갖추고 나서는 장면, 적들과 맞서 싸우는 모습,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보는 순간 저와 동생은 이미 게임 시작도 전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시리즈 전통의 선형 액션을 계승하면서도, 스테이지 도중 갈림길과 분기 루트, 구조 이벤트를 넣어 단순히 한 줄로만 진행되는 게임과는 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리히터 벨몬드는 기본 무기로 채찍을 사용하고, 여섯 가지 서브웨폰과 이를 강화한 아이템 크래시를 사용할 수 있으며,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마리아 르나드를 구출해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하고 나면 이 작품의 진가는 더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는 구조지만, 각 스테이지가 단순한 이동 구간이 아니라 긴장감과 연출이 살아 있는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보스전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늑대인간, 골렘, 미노타우로스, 그리고 드라큘라까지 보스마다 분위기와 공략 방식이 확실히 달랐기 때문에 단순히 버튼만 누르며 넘길 수 없었습니다. 어느 타이밍에 공격해야 하는지, 어떤 위치에서 피해야 하는지, 지금 가진 무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서 게임에 훨씬 깊이 몰입하게 했습니다. 시리즈 전체로 봐도 피의 론도는 다양한 루트와 보스, 그리고 구조 요소 때문에 반복 플레이의 재미가 높은 작품으로 자주 평가됩니다.

숨겨진 루트와 달성률이 만들어 준 깊은 몰입감
이 게임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각 스테이지가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도달하는 보스가 달라지기도 하고, 숨겨진 길이나 다른 루트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스테이지라도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혹시 놓친 길이 있는지 다시 들어가 보고, 다른 방향으로도 진행해 보고, 보이지 않던 비밀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악마성 드라큘라 X는 그냥 엔딩만 보는 게임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발견하고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느냐가 중요한 게임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9개의 메인 스테이지와 4개의 대체 루트를 갖고 있고, 플레이 과정에 따라 이후에 만나는 환경과 몬스터, 보스가 달라지는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저는 이 게임의 진행률 100퍼센트를 꼭 달성하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하는 게임이니 오락실처럼 동전 걱정도 없고, 주말 내내 붙잡고 있어도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엔딩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게임을 완벽하게 끝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100퍼센트는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최종 달성률이 92퍼센트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100퍼센트를 위해서는 납치된 여성들을 모두 구출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특정 루트와 조건을 놓치지 않아야 했습니다. 저는 끝내 그 모든 조건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안넷을 포함해 구조 가능한 여성들이 존재하고, 마리아 르나드를 구출하면 플레이 방식 자체도 달라집니다. 이런 구조가 게임의 완성도와 반복 플레이 가치를 높였지만, 동시에 완벽 클리어를 더 어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은 미완의 명작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유튜브 검색만으로 숨겨진 루트, 구조 조건, 각종 비기와 공략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시대였다면 아마 100퍼센트 달성도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정보를 얻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게임 잡지에 다뤄져야 알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아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악마성 드라큘라 X는 완벽하게 끝낸 게임이 아니라 끝내 다 채우지 못한 미완의 게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끝낸 게임보다, 조금 부족하게 남겨 둔 게임이 더 자주 떠오를 때가 있으니까요.
지금 돌아보면 악마성 드라큘라 X 피의 론도는 PC엔진 듀오 시절을 대표하는 가장 강렬한 게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CD 매체가 줄 수 있는 연출과 음악, 액션 게임으로서의 손맛, 분기 루트와 달성률 시스템이 주는 탐색의 재미까지 모두 갖춘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이 게임은 단순한 고전 액션 게임이 아니라, “이 정도까지 만들 수 있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남아 있는 특별한 추억입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100퍼센트를 채우지 못했기에,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다시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 게임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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