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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게임기에 대한 기대
가정용 콘솔 게임기를 세대별로 나누면 지금은 보통 1세대부터 9세대까지 이야기합니다.
제가 처음 접한 콘솔 게임기는 대우 재믹스였고, 이후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콤, 그리고 PC엔진 듀오까지 여러 기기를 거치며 게임을 즐겨 왔습니다. 그렇게 몇 가지 게임기를 경험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 게임기는 또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기대감도 커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은 그런 기대가 정말 뜨겁게 부풀어 오르던 시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오락실에서 이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3년에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3D 격투 게임 시대가 열렸고, 이후 3D라는 개념은 게임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버추어 파이터는 1993년 아케이드로 나온 세가 AM2의 3D 폴리곤 격투 게임으로, 이후 3D 격투 장르의 출발점처럼 여겨지는 작품입니다.
그 무렵 세가는 차세대 게임기 세가 새턴을 공개했고, 여기에 버추어 파이터를 함께 내세우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가 새턴은 1994년 6월 도쿄 토이쇼에서 본격적으로 공개되었고, 같은 해 11월 22일 일본에서 발매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초기 판매에서 버추어 파이터는 새턴의 핵심 킬러 타이틀 역할을 했고, 실제로 초반 판매를 강하게 끌어올린 대표작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러니 그 시절 가정용 콘솔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차세대 게임기 = 세가 새턴”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세가 새턴과 버추어 파이터
저와 동생도 딱 그랬습니다.
버추어 파이터에 푹 빠져 거의 매일 오락실을 들락거리던 시기였으니, 세가 새턴이 나오면 언젠가는 꼭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콤, PC엔진 듀오까지 거치며 집에서 게임을 해왔던 저희 형제에게도 차세대 게임기에 대한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은 거의 세가 새턴 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버추어 파이터를 집에서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큰 이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습니다.
차세대 게임기는 우리 형제가 학생이던 시절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동생은 늘 그래왔듯이 일단 돈부터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이 비싸다라는 것을 따질 겨를도 없이 “어쨌든 모아야 한다”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고, 세가 새턴과 버추어 파이터를 바로 손에 넣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잡지를 보며 상상만 할 뿐, 당장 집에서 플레이해 볼 수는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또 다른 가정용 콘솔 게임기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재미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느 주말 오후,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시장 안쪽에 있었는데, 그 근처에는 문구와 완구를 도소매하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던 중, 어느 완구 가게 앞에 TV 한 대가 전시되어 있고 그 화면에 게임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발길이 멈췄습니다. 왜냐하면 그 화면 속 게임이 우리 형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3D 격투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격투 게임은 맞았습니다.
그런데 버추어 파이터처럼 맨손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칼과 검 같은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휘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장풍 같은 기술을 쓰고, 칼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초필살기처럼 보이는 연출까지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와 동생은 거의 동시에 “응? 뭐야 저거?” 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고, 한참 동안 넋이 나간 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게임이 바로 타카라의 투신전이었습니다. 투신전은 1995년 플레이스테이션용 3D 무기 격투 게임으로, 초기 PS1을 대표하는 화제작 가운데 하나였고 횡이동 개념을 본격적으로 보여 준 작품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리고 그 게임을 돌리고 있던 기기가 바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1994년 12월 3일 일본에서 처음 발매된 소니의 1세대 콘솔로, 세가 새턴의 일본 발매 바로 다음 주에 등장했습니다. 출시 직후 큰 반응을 얻었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며 소니 게임 사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저와 동생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말 그대로 “이건 또 무슨 게임기지?” 하는 충격이 먼저였습니다.

형제와 플레이스테이션과의 인연
집으로 돌아온 뒤 저희 형제는 곧바로 게임 매장을 통해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꽤 현실적이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세가 새턴과 버추어 파이터는, 그때까지 모아 둔 돈과 PC엔진 듀오를 팔아서 보탠 돈을 합쳐도 새 제품은커녕 중고를 사기에도 빠듯한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플레이스테이션은 마침 중고 매물이 있었고, 저희가 가진 돈에 PC엔진 듀오를 팔아 보태면 본체를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게임 CD 하나 정도까지는 같이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와 동생은 차세대 게임기를 구하는 계획 자체를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결국 결론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세가 새턴과 버추어 파이터는 형편상 언제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지금 당장 살 수 있다. 그러니 일단 플레이스테이션을 먼저 중고로 구하고, 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하다가 나중에 용돈이 또 모이면 그 때 가서 플레이스테이션을 팔고 세가 새턴 중고와 버추어 파이터를 구입하자” 그렇게 저희는 우선 현실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차세대 게임기부터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냉정하고도 현실적인 판단이었지만, 그 시절 저희 형제에게는 정말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이후 30년 넘게 이어질 플레이스테이션과의 인연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얼마 뒤 저희는 결국 게임 매장에 가서 PC엔진 듀오와 게임 CD들을 중고로 판매하고, 그 돈에 그동안 모은 용돈을 더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투신전을 구해 오게 됩니다.



그 순간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장에 살 수 없었던 세가 새턴에 대한 아쉬움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손에 들어온 플레이스테이션과 투신전을 보자 그런 감정은 금세 설렘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32비트 게임기, 새로운 3D 격투 게임, 그리고 전혀 다른 게임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선택은 단순히 게임기 하나를 바꾼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저와 동생의 게임 인생이 또 한 번 크게 방향을 튼 순간이었습니다. 재믹스에서 메가드라이브로, 메가드라이브에서 슈퍼패미콤으로, 그리고 PC엔진 듀오를 거쳐 결국 플레이스테이션에 이르기까지, 매번 새로운 게임기가 열어 주는 세계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그중에서도 특히 오래 이어진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그 완구 가게 앞에서 처음 투신전 화면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던 그 순간을, 아직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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